작성일 : 25-08-09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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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유지신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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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노동 작가 후안옌. 19번의 직업 변천사를 세밀하게 기록한 첫 책 ‘나는 북경의 택배 기사입니다’로 초대형 글로벌 작가가 됐다./사진 제공=후안옌

19개 직업을 거쳐온 사람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말 그대로 ‘사회에 내던져진’ 20세 중국 청년. 부지런히 일하고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면 살 수 있다던 부모님의 가르침과 달알라딘게임예시
리, 그 앞에 펼쳐진 세상은 만만치 않다. 학벌도 재력도 사회생활 요령도 없이 오로지 성실 하나만 무기로 갖고 세상에 나온 이 심약하고 섬세한 젊은이 앞에 ‘제조업과 물류’를 중심으로 무섭게 성장하는 동시대 중국의 험난한 노동 현실이 펼쳐진다.
초대형 글로벌 베스트셀러 ‘나는 북경의 택배 기사입니다’에는 제조업과 IT, 물류의 중심지로 급양봉타법
성장한 중국의 맨얼굴이 극사실주의적인 노동의 필체로 그려진다. 후안옌은 광둥성, 윈난성, 베이징, 상하이 등 여러 지방과 대도시로 이동하며 택배 회사, 물류 센터, 주유소, 편의점, 쇼핑몰, 자전거 가게, 옷 가게 등의 일터를 전전한다.
‘물류센터는 거대한 부두 같았다. 동료는 90킬로그램이던 몸무게가 석 달 만에 65킬로그램으로 줄었다…낙폭과대우량주
우리는 하루에 12시간씩 일했다. 밤낮이 뒤바뀐 생활에 눕지 않아도 휘청대기 일쑤였고 좀비 같았다.’-’나는 북경의 택배 기사입니다’ 중에서
젊음과 육체를 갈아 넣어 소비사회의 인프라를 만들어내는 1/n의 ‘필수 노동자’로, 그가 통과한 문장들은 과장도 연민도 없이 정밀하다. 호텔부터 주유소까지, 물류부터 쇼핑몰까지, 산업 전반의 일자리태양열테마주
를 ‘대체가능한 인력’으로 돌려 쓰는 사회주의 중국의 매정한 효율성과 서로에게 동정심을 잃어가며 기회주의자로 변해가는 중국 노동자들의 상호 불신에, 나는 가슴이 쓰렸다.
중국은 너무 크고 너무 치열하고 너무 빨리 바뀌고 너무 자주 배신했다. 노동자도 사장도, 관리직도 임시직도, 아르바이트생이나 자영업자도 심지어 고객으로 사는 것도 쉽지 않삼천리 주식
아 보였다.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빌런이 되어 거대한 톱니바퀴처럼 중국 사회를 앞으로 굴리고 있었다.

고밀도 물류 사회 중국. 광둥성 광저우 D사 물류창고에서서 야간 작업 중인 후안옌.

다행인지 불행인지 후안옌은 일을 좋아했다. 그러나 잇속을 챙기지 못하는 소심한 그는 약삭빠른 동료와 상사에게 속절없이 당했다고 했다. 육식동물원에 잘못 배정된 초식동물처럼. 첫 직장인 호텔 연회부의 동료들은 한 번에 여러 개의 의자를 옮기는 그를 비웃는다. ‘네가 빨리할수록 저들은 더 많은 일을 줄 거’라고.
스트레스에 절여진 사람들은 다른 비천한 사람들을 괴롭혔다. 주유소 출근 첫날, 동료는 말도 섞지 않은 채 주유기의 기본 작동법만 가르쳐주었다. 택시 기사들은 일하다가 받은 스트레스와 분노를 주유소 직원에게 풀었다. 누구도 괴롭힐 수 없을 때는 동물을 학대했다.
적응하기 힘든 세상에서 인정받으려 애쓰다가 실패하던 그는, 어느 날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상생활의 붕괴를 묘사한 레이먼드 카버를 읽었고,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읽었다. 소설을 쓰고 문학잡지에 형편없는 수준의 원고료도 받았다. 그가 했던 모든 일을 뛰어넘는 열정이었다. 그러던 중 코로나 실업 기간에 인터넷에 올린 노동 일기가 100만 회 이상 조회되며 돌풍을 일으켰고, 벼락같은 첫 책 ‘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가 출간되었다.
글 쓰는 택배 기사가 출간한 책은 이례적으로 유수의 중국 문학상을 휩쓸고 전 세계 16개국에 판권 수출되었으며, 영화와 드라마 제작까지 앞두고 있다.
전 세계를 뒤흔든 중국의 N잡러, 일하는 모든 인간의 슬픔과 도피, 희망을 건드린 후안옌을 인터뷰했다.

노동 현장에 대한 해상도 높은 묘사를 담은 책 ‘나는 북경의 택배 기사입니다’.

-누군가는 당신의 책을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에 비교하고, 누군가는 알랭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을 끌어오기도 합니다. 일에 관한 당신의 글은 무엇에 가깝습니까?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는 저도 읽어보았습니다. 위화는 살아 있는 중국 작가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중국 독자들은 ‘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를 ‘허삼관 매혈기’와 비교하지 않습니다. 두 작품은 크게 달라요. 위화는 ‘인생’, ‘허삼관 매혈기’를 쓸 때 명확하게 루쉰(‘아Q정전’의 작가)을 목표와 기준으로 정했어요. 사회 하층민의 시각으로 민족성과 사회성, 인성 등을 상징하고 비유했죠.
저는 그보다 훨씬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개인의 득실과 감정에 관심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위화의 작품은 소설이지만, 저는 실제 경험이었어요.”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 같은 노동 르포 분위기도 나더군요. 아마존 택배사에서 일하며 여행하던 영화 ‘노마드랜드’도 생각나고요.
“영화 ‘노매드랜드’는 봤지만 원작은 못 읽었어요. 영화의 색조와 풍경은 좋았지만 플롯이나 대사에서 깊은 인상을 받지는 않았어요. 알랭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이나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도 읽은 적이 없습니다.
심플하게 말하자면 ‘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는 노동 자서전이에요. 제 노동은 대다수 사람이 그러듯이 생계를 위한 필수 활동이었어요. 그 지난한 일들을 뒤돌아보고 되짚어본 뒤 기록했습니다.”

금융 위기 이후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일하며 유목민처럼 사는 삶을 담은 영화 ‘노매드랜드’의 한 장면.

-사실 당신이 20세 호텔 종업원부터 시작해서 물류 센터, 택배 기사에 이르기까지 왜 그렇게 많은 일을 거쳤는지 궁금했습니다. 일터를 바꾸고 다른 노동에 적응할 때마다 힘들었을 텐데요.
“중국은 개혁 개방 이후, 그러니까 1990년대부터 대규모 제조업이 발달하면서 직업을 자주 바꾸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20년 동안 20~30번 바꾸는 경우도 드물지 않아요. 복잡한 기술을 요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하루이틀 간단한 교육만 받으면 바로 일할 수 있습니다. 급여도 높지 않고 승진 기회도 거의 없으며 해당 업종에서 축적한 고객이나 인맥 등에 의존하지도 않지요.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어느 회사나 업종이 지루해지면 다른 업종으로 바꿔 다시 시작해도 매몰 비용 같은 게 없어요. 오히려 이직 중간에 잠시 쉴 수도 있고, 새로운 일에서 신선함을 맛볼 수도 있죠. 솔직히 그런 일은 소중히 여길 만큼 좋은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관리직으로 승진하거나 개인적 노력으로 고급 기술을 습득해 핵심 인력이 되고 수입이 늘어나면 더는 직장을 바꾸지 않겠지요. 제 상황은 상대적으로 특수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육체노동만 한 게 아닙니다. 일을 하면서 야간대학 졸업장을 취득했고, 2004년부터 3년간 미술 편집과 만화 제작 일을 했어요.
하지만 그 일들은 다 급여가 낮았고, 육체노동만도 못했습니다. 회사는 제가 이직하고 얼마 뒤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2007년에는 돈을 벌 요량으로 친구와 여성복 장사를 했지만, 받은 상처가 수익보다 훨씬 컸어요. 이후 제 인생관이 바뀌었습니다. 어쨌든 여러 해 동안 제 나이와 경력이 얕았기에 선택지가 좁았어요. 쇼핑몰 경비원, 편의점 직원, 택배기사 같은 일밖에 구할 수 없었죠.”
-그러니까 그렇게 일터를 자주 바꾼 주된 이유가…
“제가 어느 자리에서도 포기하기 아까울 정도의 성과를 내지 못해서입니다.”
스스로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고백이 뼈를 때렸다. 그건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채플린 시대의 영국처럼 산업 사회의 부조리로 다가왔다. 책에서 물류 센터 직원으로, 택배 기사로 일하는 그를 보면, 부당한 관료주의와 이기적인 약자들의 관행에 저항하지 않는 그의 인내가 경이로울 정도였다.

노트북을 보며 자전거를 타고 가는 칭화대 학생들. 고학력자는 늘어나는데 그들을 감당할만한 일자리가 부족한 중국.

-중국의 청년 취업도 매우 심각하다고 들었어요. 물론 제가 들은 건 명문대를 나와도 우체국 하급 관리로도 채용되기 어려워 노는 청년들이 많다는 뉴스였습니다. 어떤가요? 미국과 무역 전쟁 중인 지금, 중국의 취업난은 어느 정도인가요?
“말씀하신 취업난 문제는 실제로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봤던 중국의 실업 문제는 일자리 자체를 찾을 수 없다는 게 아니라 청년들이 기대에 부합하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다는 내용에 가까워요. 가령 대학 졸업생한테 공장에서 나사를 조이거나 식당에서 설거지하라고 하면 받아들이기 힘들겠죠. 부모로서도 투자한 교육비를 어떻게 회수하느냐고 불만을 제기할 겁니다.
표면적으로는 고등교육의 보급 수준이 사회의 산업 업그레이드 속도를 뛰어넘어서, 사회가 고학력 청년들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모양새입니다. 2018년에 제가 근무했던 핀쥔택배를 예로 들어보죠. 저희 지점에 지점장과 고등학교 동창인 동료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낙후된 산시성의 작은 도시 출신이었습니다. 동료는 대학에 진학했지만, 지점장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베이징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4년 뒤 동료는 대학을 졸업했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했고, 저희 지점장은 오랜 친구를. 자신이 관리하는 베이징의 택배회사 지점에 채용했지요. 결국 나이는 같은데 학력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의 부하 직원이 되었습니다. 이 상황을 단순히 취업이라는 각도에서만 보면 동료가 받은 4년의 대학 교육은 불필요한 낭비 같죠.
중국은 면적이 크고 인구가 많아서 취업난 문제도 매우 복잡합니다. 집안 상황에 따라 직업과 일을 대하는 젊은이들의 태도는 크게 다릅니다. 이런 문제는 일괄적으로 말할 수 없어요.”
-중국 청년들이 일을 대하는 태도에도 변화가 있나요? 최근 몇 년 사이 감지된 특이점은 무엇인가요?
“젊은이들이 ‘네이쥐안(內卷: 무한 경쟁)’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아예 ’탕핑(?平: 드러누워 아무것도 안 함)’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사실입니다. ‘네이쥐안’이나 ‘탕핑’이라는 말은 예전에는 없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등장한 신조어입니다.”

탕핑 족을 빗댄 그림. 적극적인 근로도 소비도 회피하고 최소한의 생계활동만 수행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누워서 보내겠다는 탕핑족. ‘내가 누우면 자본이 절대 나를 착취할 수 없다’는 젊은이들의 분노 표현이다.

-물류 센터는 컨베이어벨트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보여줬지요. 언제 가장 힘들었나요?
“물류회사의 화물운송터미널인 그곳은 낮에는 쥐 죽은 듯 조용하다가 밤이 되면 불이 꺼지지 않는 대규모 작업장이었습니다. 그 안의 구석구석이 전부 각인되어 저는 어느 하나도 잊을 수 없습니다. 가장 힘든 건 높은 노동 강도와 밤낮이 뒤바뀐 오랜 야간 근무였습니다. 수습 기간을 거친 사람 중 남아서 석 달을 채운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았습니다. 떠난 지 이미 8년이 되었지만 지금도 지친 동료들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택배 기사는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밧줄과 같습니다. 하지만 택배 기사의 일과 관계, 스트레스, 보상 문제는 정말 만만치 않더군요. 편한 택배 영역을 두고 일어나는 부조리한 경쟁, 임시직과 정직, 삼륜차, 게으른 자와 성실한 자, 이상한 고객들, 비인간적인 관리자들… S사에서 일하던 6개월간 누가 가장 의지가 됐습니까?
“S사에서는 의지할 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지인의 소개로 들어간 게 아니라 저 혼자 독자적으로 지원했거든요. 저희 지점 근무자는 50~60명 정도였는데 10여 개 팀으로 나뉘었고 각 팀이 독립적으로 각기 다른 지역을 맡아 움직였습니다. 팀원 간에는 협력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경쟁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어떤 단지는 조건이 좋아서 팀원 모두 원했고, 어떤 단지는 누구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자기 이익부터 생각하지 동료를 지원하려 하지 않지요.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할 수 없습니다.
다만 입사 초기에 임시로 배정된 팀의 페이거라는 동료는 제게 우호적이었습니다. 페이거는 소위 ‘탕핑족’으로 기본 업무량만 채우려 할 뿐, 더 많이 일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기꺼이 본인의 일을 저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아쉽게도 페이거와는 2주 정도만 함께 일하고 다른 팀으로 배정되면서 헤어졌습니다.”

중국은 개혁 개방 이후, 그러니까 1990년대부터 대규모 제조업이 발달하면서 직업을 자주 바꾸는 사람이 많아졌다. 20년 동안 20~30번 바꾸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베이징 S사에서 택배 분류 중인 사람들.

“왜 내 물건은 택배 함에 넣어요? 내가 그러라고 했어요?” 그가 계속 따졌다.
“그럼 문 앞에서 세 번이나 전화했는데 왜 안 받았습니까?”
“어쨌든 두리안을 택배함에 넣으면 안 되죠.”
얼마나 화가 나는지 손이 덜덜 떨렸다. 호의를 악의로 받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다.
가장 젊은 청년은 하루가 멀다고 배상금을 물다가 결국 일을 그만두었다.
도난이 확실해졌을 때는 일을 할 동력을 잃어버렸다. 열차와 정면으로 충돌하기라도 한 듯 정신이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나는 북경의 택배 기사입니다’ 중에서.
-기억나는 고객은 누구였나요? 물건을 기다려준 여유 있는 할아버지? 택배함에 있는 두리안 과일을 당장 가져오라고 강짜를 부리던 고객?
“이 질문을 당시에 받았다면, 언급하신 두리안 구매 고객처럼 저를 화나게 만든 고객이라고 답했을 겁니다. 하지만 분노의 감정은 오래가지 않지요. 시간이 흘러 이제 다시 돌아보니 그런 사람들은 색 바랜 사진처럼 희미한 윤곽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지금 되돌아볼 때 가장 기억나는 고객은 핀쥔택배의 폐업을 앞두고 해당 사실을 SNS에 올렸을 때 댓글을 달아준 고객입니다. 자신이 만났던 택배기사 가운데 가장 책임감 있었다고 해주셨지요. 잘 아는 고객도 아니었고 택배 물량이 특별히 많거나 만날 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고객도 아니었습니다.
댓글이 달리기 전까지 저를 그렇게 높게 평가하는지도 몰랐고요. 제 기억 속에서 그분은 아주 평범한 고객 중 한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물류나 택배 회사의 관리자는 대체로 권위적이고 모순적이었다. 기강 확립을 이유로 늦은 밤 기사들을 소집해 팔굽혀 펴기를 시켰고, 물건을 건넬 때 고객에게 “쓰레기를 버려드릴까요?”라고 묻고 별점 5점을 부탁하라고 지시했다. 별점 순위가 낮은 사람은 회의 때마다 질책했다. 소심한 후안옌은 마음을 졸이면서도 고객에게 차마 별점을 부탁할 수 없었다고 했다.

택배 기사들은 그 자신, 부서지기 쉬운 사람들이었다.

-나는 가축이 아니라 깨어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채찍 아래 일하고 싶지 않았다, 라는 문장이 가슴을 파고듭니다.
“저는 고객이 자발적으로 별점을 주어야 진정한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다수 고객은 입으로 감사할 뿐, 휴대전화를 꺼내 앱을 켜고 주문 내역을 찾아서 좋은 평가를 남기지 않아요. 그런 일은 번거롭고 시간 낭비니까요.
하지만 회사에서는 그런 방식으로 저희의 일을 평가했습니다. 저는 순위가 뒤처져 비난을 받을까 봐 두려웠어요. 그렇게 가슴을 졸이다 결국 S사를 떠나게 됐습니다.”
-어떤 일들에 화가 났고 어떤 일들에 마음이 진정됐나요?
“배달할 때 저희는 주문 목록을 수시로 새로고침하고 고객에게 전화하고 업무채팅방 메시지에 답하고 머릿속으로 배송 순서와 노선을 짜야 합니다. 삼륜차로 도로를 달릴 때는 교통 상황을 수시로 체크해야 하지요. 높은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니 긴장 상태로 지낼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 일을 하면 쉽게 화가 납니다. 언제나 시간을 다투고 그렇지 않아도 신경이 곤두선 상태라 차량 정체나 경비원과의 갈등, 고객의 독촉 전화 같은 작은 일에도 툭하면 화가 납니다. 화는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자발적 감정이라 당시 저는 억누르려 해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고객에게 화를 내지는 않았습니다. 고객에게 화를 냈다가는 불만이 접수되니까요.
매일 배송을 마친 뒤 삼륜차를 타고 지점으로 돌아갈 때가 마음이 제일 평온했습니다.”
불평하지 않고 성실한 특성 덕분에 사장들은 그를 좋아했고 갈수록 부담을 줬고 끝내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사직하는 일이 반복되었다고 했다. 특별히 금고에서 돈을 빼서 달아난 직원 때문에 편의점 야간 점원으로 일하던 후안옌을 긴급 고용했던 상하이 자전거 가게 사장에게, 나는 연민을 느꼈다.
세상 소비의 절반이 충동구매라 믿었던 그 사장은 타고난 투사였다고 했다. 네댓 시간만 자고도 필사적으로 일했고 흥분제라도 맞은 것처럼 일에 매달렸다. 음식을 후하게 사줬지만, 항상 직원들과 대립하고 배신당했다. 과하게 요구하고 과하게 베풀고 과하게 상처 주고 과하게 보상했다. 늘 끊임없는 격정 속에서 살았다던 그 사장에게, 신자유주의 세상에 포진한 고기능성 불안장애 환자들이 겹쳐 보였다.

자본주의와 소비사회에 가장 어울리는 캐릭터는 상하이 자전거 가게 사장이었다. 후안옌은 그의 순진한 열정을 좋아했다. 사진은 자전거 수리 작업 중인 동료와 함께 한 후안옌.

-상하이 자전거 상점 이야기를 해볼까요? 가게 사장과 그 동료들이 일하는 방식, 맺는 관계가 흥미로웠어요. 특히 사장님은 매우 복합적인 인물이더군요. 불판 위의 개미처럼 불안해하고 반복적인 이해득실을 따지고 필사적으로 일했으나 동료와 업계에서는 좋은 평판을 얻지 못했던 사장님. 그러나 늘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 줬다지요?
“맞아요. 자전거 가게 사장은 열정적이고 의욕적이며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인생을 전쟁터로 여기며 마지막 순간까지 싸우는 유형이었지요. 실제로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사실 저는 그녀에게 존경과 호감을 품고 있었습니다. 세태에 물든 사람이 아니라 때로는 아주 순수하기까지 했습니다.”
-쇼핑몰의 경비원에서 쇼핑몰의 제과점 직원으로 옮겨졌을 땐 어땠습니까?
“솔직히 베이커리 일이 경비보다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쇼핑몰 경비는 지루했습니다. 면적도 크지 않아서 천천히 걸어도 20분이면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었어요. 저는 매장 직원들과 잡담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여덟 시간씩 쇼핑몰을 도는 일은 저에게 고역이었습니다.
제빵부로 배정된 뒤에는 여덟 시간 내내 바빴습니다. 시간을 아주 충실하게 보냈지요. 빵 굽는 일은 재미도 있고 성취감도 있었습니다. 경비원과 달리 기술이 필요한 일이었어요. 갈수록 능숙해지고 매일 발전하는 걸 느꼈어요. 만족스럽게 빵을 한 판 구워낼 때마다 작은 성취감도 느꼈습니다.”
-당신은 불평이 많지 않고 순응적이며 책임감이 강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매우 복잡성이 높은 정신세계를 갖고 있지요. 그래서 이렇게 훌륭한 노동 에세이를 쓸 수 있었겠지만요. 저는 올 초에는 ‘완벽에 관하여’를 쓴 뉴욕 목수 마크 엘리슨을 인터뷰했어요. 여러 직업을 전전했지만 결국 목수로서 완성도 높은 장인이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북경의 택배기사와 뉴욕 목수의 접점은 무엇일까요? 몰두와 성취에 관해서 닮은 점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뉴욕 목수가 쓴 ‘완벽에 관하여’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베이징의 택배기사와 마크 엘리슨이라는 뉴욕의 목수 사이에 어떤 접점이 있는지는 평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베이징 택배기사의 보편적인 상황은 소개할 수 있습니다.
우선 베이징의 택배기사는 대부분 베이징 현지인이 아니라 낙후된 주변 지역에서 온 외지인입니다. 다양한 제약 때문에 절대다수가 오랫동안 베이징에 머물 수 없습니다. 언젠가 떠나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기에 베이징에서는 돈을 벌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이 없어요. 그래서 더 많이 일하기를 원합니다. 이를테면 주당 40시간이 아니라 70~80시간 이상 일하며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합니다.
인생을 단계로 나눌 때 베이징의 단계는 일에 집중하는 시기, 심지어 일만 생각하는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성취감을 느낀다면 그것 역시 돈과 관련될 겁니다. 저는 택배 일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더 나은 선택지가 없어서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자 점점 익숙해졌고 효율도 높아지면서 일의 강도와 리듬에도 적응했습니다.
지금의 저에게는 택배 일이 악마라 해도 이미 익숙한 악마입니다. 당시 주변 동료 중에 진심으로 택배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설령 그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더라도요.”

메이드 인 차이나는 자국 노동자들의 관계와 정체성을 파편화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사진은 후안옌이 거주하던 단칸방.

-수많은 직업의 연대기를 그리고 난 후 좀 더 애틋하게 다가오는 직업이 있나요?
“중국 독자들은 물류 센터와 택배 기사 이야기에 열광하더군요. 저는 특별히 좋아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책을 쓸 때 이미 일터를 떠난 뒤라 달라진 시선으로 과거를 돌아보았고, 다행히 당시보다는 마음이 안정되었어요.”
-청년에게 일이란 무엇일까요? 자유, 돈, 집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개인의 차이를 존중합니다. ‘청년’이라는 집단에 대한 의견은 내지 않으려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젊지도 않고요. 돌이켜보니, 말씀하신 문제들에 대한 제 생각도 나이가 들면서 계속 발전하고 변했습니다. 하나뿐인 정답은 없더군요. 그래서 젊은이들이 일, 자유, 돈, 집으로 향하는 길을 조금 돌아가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2009년 10월. 후안예은 샐린저를 모방하는 첫 글쓰기에서 시작했다.

-글쓰기를 하면서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좀 더 성숙해진 것 같습니다. 지금의 시선으로 과거의 저를 떠올리면, 미숙해서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젊은 시절의 인생을 진지하게 다시 살게 되지요.”
-일하는 태도에 가장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였나요?
“어머니입니다. 어머니가 어떻게 일을 대해야 하는지 따로 가르쳐 주신 적은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지금의 저를 만드셨지요. 많은 부분이 어머니에게서 왔습니다.”
-존경할 만한 파트너나 상사는 있었습니까? 일하는 사람은 얼마나 고귀해질 수 있고 얼마나 천박해질 수 있나요? 그것을 가르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상하이 자전거 가게의 사장을 상사로 존경했습니다. 그녀의 끈기와 집념, 열정, 포기하지 않는 태도에 탄복했지요. 하지만 저와 그녀는 아주 다른 사람입니다. 사람이 일터에서 얼마나 고귀하고 천박해질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대체로 제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이익을 취하고 손해를 피하려 하지요. 고귀한 품행이 칭찬과 보상을 받고 비열한 품행이 비난과 처벌을 받는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고귀한 품행을 추구하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현실 세계는 무척 복잡하고 완벽해질 수 없어요.”

그토록 바라던 자유를 만끽한 순간. 영화 ‘쇼생크탈출’의 한 장면.

-물류와 택배 일은 당신에게 어떤 방식으로 품위를 가르쳤나요?
“완벽주의자는 아니지만 저는 실수와 질책이 무서웠어요. 물류와 택배 일은 제가 실수를 받아들이고 거기에 적응하도록 해주었습니다. 일의 강도도 높고 중간에 통제할 수 없는 요소도 다양해서 실수는 불가피했습니다. 사실 실수란 누구나 저지르고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일하지 않는 사람만 실수하지 않는 법이지요.
물류와 택배 일은 저에게 정말 다양한 영향을 미쳤고, 결정적으로 그 일 덕분에 저는 스트레스 속에서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워라밸 추구 혹은 워커홀릭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깨달은 일과 자유에 대한 느낌을 나눠주시지요.
“10여 년 동안 여러 일터를 전전하며 저는 주당 70~80시간 이상씩 일했습니다. 거기에 필수적인 수면, 세수, 통근 시간 등을 빼고 나면 저만의 여가 시간은 불쌍할 정도로 적었어요. 일터에서 저는 다양한 요구와 규율에 맞닥뜨렸습니다. 상사의 지시, 회사의 방침, 고객의 취향, 시장의 흐름 등 여러 요소를 따라 흔들렸어요.
안타깝지만 ‘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에서 경험한 일은 저를 감정과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도구로 만들려 했습니다. 일은 저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저는 오랫동안 주체성을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어요.
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한, 이 난제를 푸는 건 어렵습니다. 하지만 해결할 수 없다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걸 인식하고 중시한 것만으로 저는 모종의 가능성을 품게 되었어요. 일은 어떤 단계에서 제 삶을 가득 채웠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제 일생을 전부 차지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시점부터는 일을 통해 먹고살지만, 그 일을 통해 진정한 개인적 가치를 추구하려 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 도구가 아니라 목적 자체가 되는 상태를. ‘자유’란 제가 일과 삶 속에서 주체성을 찾는 과정이에요.”

이토록 우아하게 패배에 도달한 사람을 본 적이 있었던가. 한동안 잊고 있던 ‘노동의 얼굴’을, 알고도 외면했던 ‘노동의 표정’을 그를 통해 직면했다./사진 제공=후안옌.

-마지막으로 책의 에필로그에서 당신이 언급했던 ‘위대한 실의’에 대한 해석을 부탁합니다.
“‘위대한 실의’는 버지니아 울프가 300년 전에 살았던 영국 부인 래티샤 필킹턴의 굴곡진 일생에 대해 내린 평가입니다. 물론 래티샤는 그런 굴곡을 좋아하지 않았지요. 회고록에서 직접 밝힌 래티샤의 인생 목표는 ‘온순하고 무해한 가정의 비둘기’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망을 이룰 수 없었지요.
래티샤는 귀족 가문의 아가씨에서 하인의 이웃으로 전락했고 마지막에는 방세를 내지 못해 감옥에 갇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래티샤의 역경과 불행을 신중하지 못한 그녀 탓으로 돌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녀보다 출신이 낮은 사람들 눈에는 ‘좋은 패를 망쳐버린 것’으로 보였을 테니까요. 하지만 신중해서 평탄하게 산 사람들보다 래티샤는 훨씬 진실하고 감동적으로 살았습니다.
그녀의 거침없는 사랑과 증오, 솔직함과 천진함, 열정과 용기, 심지어 쩨쩨한 복수심에까지 저는 깊이 감동했습니다. 사실 많은 부분에서 저는 래티샤와 정반대입니다. 저는 나약하고 억눌려 있고 고독하며 자존감이 형편없습니다. 래티샤는 제가 되고 싶지만, 결코 될 수 없는 사람이지요.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래티샤는 이미 절망적인 상황에 빠졌는데도 여전히 유머를 잃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죽고 머리맡에 빚 독촉장이 있는데도 오리고기를 즐길 수 있었다’라는 대목을 처음 읽었을 때 전율을 느꼈습니다.그 문장이 저에게 인생을 마주할 힘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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